Daily · Poems & Quotes
Verse of the Day
Each day, a passage from a poem, novel, or essay and a quote, chosen to suit the season. Browse past verses by date, or all verses by author or season.
PoetryAll seasons
〈가는 길〉
김소월 · 그립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江)물 뒷강(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지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utumn
〈가을 아침에〉
김소월 ·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섭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 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롭은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뷔엽던 날 그립은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밉음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개여울〉
김소월 · 당신은 무슨 일로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금잔디〉
김소월 · 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Winter
〈눈 오는 저녁〉
김소월 · 바람자는 이 저녁
바람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먼 후일〉
김소월 ·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못 잊어〉
김소월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립어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ummer
〈바다〉
김소월 ·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위에 앉아 사랑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조히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이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은 딴나라이라 가고싶은 그립은 바다는 어디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Winter
〈부모〉
김소월 · 낙엽(落葉)이 우수수 떨어질때,
낙엽(落葉)이 우수수 떨어질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되어서 알아보랴?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산유화〉
김소월 · 산에는 꽃 피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 봄 가을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봄 가을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립을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ummer
〈왕십리〉
김소월 ·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제비〉
김소월 ·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一定)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섧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진달래꽃〉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초혼〉
김소월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主人)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心中)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All seasons
〈하늘 끝〉
김소월 · 불연듯
불연듯 집을 나서 산(山)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身勢)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 김소월 · 《진달래꽃》 Source ↗
PoetrySpring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꽃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처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있을테요 찰란한슬픔의 봄을
— 김영랑 · 《영랑시선》 Source ↗
PoetrySummer
〈언덕에 바로 누워〉
김영랑 · 어덕에 바로 누어
어덕에 바로 누어 아슬한 푸른하늘 뜻업시 바래다가 나는 이졌읍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몸이 서러운줄 어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의 가는웃음 한때라도 없드라냐 아슬한 하늘아래 귀여운맘 질기운맘 내눈은 감기였데 감기였데
— 김영랑 · 《영랑시선》 Source ↗
PoetryAutumn
〈음주(飮酒) 제5수〉
도연명 · 오두막을 사람 사는 곳에 지었어도
오두막을 사람 사는 곳에 지었어도 수레와 말 소리 시끄럽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면 땅도 저절로 외지다네.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가 느긋이 남산을 바라본다. 산 기운은 저물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은 짝지어 돌아온다. 이 속에 참뜻이 있으나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네.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 此中有真意,欲辯已忘言。
— 도연명 · 《飲酒二十首》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Spring
〈춘효(春曉)〉
맹호연 · 봄잠에 날 밝는 줄 몰랐더니
봄잠에 날 밝는 줄 몰랐더니 여기저기서 새 우는 소리 들린다. 간밤 비바람 소리에 꽃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春眠不覺曉,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花落知多少。
— 맹호연 · 《春曉》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All seasons
〈그날이 오면〉
심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 · 《그날이 오면》 Source ↗
PoetryAutumn
〈산거추명(山居秋暝)〉
왕유 · 텅 빈 산에 새로 비가 지나가니
텅 빈 산에 새로 비가 지나가니 저녁 날씨가 어느새 가을이다.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맑은 샘물은 바위 위를 흐른다.
空山新雨後,天氣晚來秋。 明月松間照,清泉石上流。
— 왕유 · 《山居秋暝》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All seasons
〈등관작루(登鸛雀樓)〉
왕지환 · 밝은 해는 산에 기대어 지고
밝은 해는 산에 기대어 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든다. 천 리 먼 곳까지 보고 싶어 다시 한 층을 더 오른다.
白日依山盡,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更上一層樓。
— 왕지환 · 《登鸛雀樓》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Winter
〈강설(江雪)〉
유종원 · 온 산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온 산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모든 길에 사람 자취 끊어졌는데, 외로운 배 위의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를 드리우네, 차가운 강의 눈 속에서.
千山鳥飛絕,萬徑人蹤滅。 孤舟簑笠翁,獨釣寒江雪。
— 유종원 · 《江雪》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All seasons
〈길〉
윤동주 · 잃어 버렸읍니다.
잃어 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읍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Winter
〈눈〉
윤동주 · 지난밤에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 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바 그러기에 추운 겨을에만 나리지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All seasons
〈눈 감고 간다〉
윤동주 · 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All seasons
〈바람이 불어〉
윤동주 ·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을까, 단 한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발이 반석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발이 언덕우에 섰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Spring
〈새로운 길〉
윤동주 · 내를 건너서 숲으로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All seasons
〈서시〉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Summer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Autumn
〈자화상〉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Source ↗
PoetryAutumn
〈정야사(靜夜思)〉
이백 · 침상 앞에 밝은 달빛,
침상 앞에 밝은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했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牀前明月光,疑是地上霜。 舉頭望明月,低頭思故鄉。
— 이백 · 《靜夜思》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Source ↗
PoetrySpring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서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는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민들레 제비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김을 매는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갔느냐 우습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Source ↗
PoetryAll seasons
〈광야〉
이육사 · 까마득한 날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Source ↗
PoetryWinter
〈절정〉
이육사 ·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 이육사 Source ↗
PoetrySummer
〈청포도〉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이육사 Source ↗
PoetrySpring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Source ↗
PoetryAll seasons
〈말〉
정지용 ·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너는 웨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 이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 · 《향수》 Source ↗
PoetryWinter
〈유리창 1〉
정지용 ·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琉璃)를 닥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 《향수》 Source ↗
PoetryAll seasons
〈향수〉
정지용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불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 《향수》 Source ↗
PoetrySpring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팽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혀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 한용운 · 《님의 침묵》 Source ↗
PoetryAll seasons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 나는 나룻배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 · 《님의 침묵》 Sour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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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한용운 ·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 《님의 침묵》 Source ↗
PoetryAll seasons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 《님의 침묵》 Source ↗
PoetryAutumn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 《님의 침묵》 Sour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