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봄
〈개여울〉
김소월 · 당신은 무슨 일로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 《진달래꽃》 원문 ↗
시봄
〈금잔디〉
김소월 · 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 《진달래꽃》 원문 ↗
시봄
〈산유화〉
김소월 · 산에는 꽃 피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 《진달래꽃》 원문 ↗
시봄
〈제비〉
김소월 ·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하늘로 날아다니는 제비의 몸으로도 일정(一定)한 깃을 두고 돌아오거든! 어찌 섧지 않으랴, 집도 없는 몸이야!
— 김소월 · 《진달래꽃》 원문 ↗
시봄
〈진달래꽃〉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 《진달래꽃》 원문 ↗
시봄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은 꽃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뻐처오르든 내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모란이 지고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말아 三百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있을테요 찰란한슬픔의 봄을
— 김영랑 · 《영랑시선》 원문 ↗
시봄
〈춘효(春曉)〉
맹호연 · 봄잠에 날 밝는 줄 몰랐더니
봄잠에 날 밝는 줄 몰랐더니 여기저기서 새 우는 소리 들린다. 간밤 비바람 소리에 꽃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春眠不覺曉,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花落知多少。
— 맹호연 · 《春曉》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원문 ↗
시봄
〈새로운 길〉
윤동주 · 내를 건너서 숲으로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문 ↗
시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서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는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민들레 제비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김을 매는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갔느냐 우습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원문 ↗
시봄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원문 ↗
시봄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옛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에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팽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따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혀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 한용운 · 《님의 침묵》 원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