诗秋
〈가을 아침에〉
김소월 ·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섭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 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롭은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뷔엽던 날 그립은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밉음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 김소월 · 《진달래꽃》 原文 ↗
诗秋
〈음주(飮酒) 제5수〉
도연명 · 오두막을 사람 사는 곳에 지었어도
오두막을 사람 사는 곳에 지었어도 수레와 말 소리 시끄럽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면 땅도 저절로 외지다네.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가 느긋이 남산을 바라본다. 산 기운은 저물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은 짝지어 돌아온다. 이 속에 참뜻이 있으나 말하려다 이미 말을 잊었네.
結廬在人境,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飛鳥相與還。 此中有真意,欲辯已忘言。
— 도연명 · 《飲酒二十首》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原文 ↗
诗秋
〈산거추명(山居秋暝)〉
왕유 · 텅 빈 산에 새로 비가 지나가니
텅 빈 산에 새로 비가 지나가니 저녁 날씨가 어느새 가을이다.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치고 맑은 샘물은 바위 위를 흐른다.
空山新雨後,天氣晚來秋。 明月松間照,清泉石上流。
— 왕유 · 《山居秋暝》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原文 ↗
诗秋
〈자화상〉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原文 ↗
诗秋
〈정야사(靜夜思)〉
이백 · 침상 앞에 밝은 달빛,
침상 앞에 밝은 달빛, 땅 위에 내린 서리인가 했네.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다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牀前明月光,疑是地上霜。 舉頭望明月,低頭思故鄉。
— 이백 · 《靜夜思》 (우리말 옮김: 이 사이트) 原文 ↗
诗秋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 《님의 침묵》 原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