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夏
〈바다〉
김소월 ·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잡이꾼들이 배위에 앉아 사랑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조히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이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은 딴나라이라 가고싶은 그립은 바다는 어디
— 김소월 · 《진달래꽃》 元記事 ↗
詩夏
〈왕십리〉
김소월 ·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김소월 · 《진달래꽃》 元記事 ↗
詩夏
〈언덕에 바로 누워〉
김영랑 · 어덕에 바로 누어
어덕에 바로 누어 아슬한 푸른하늘 뜻업시 바래다가 나는 이졌읍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몸이 서러운줄 어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의 가는웃음 한때라도 없드라냐 아슬한 하늘아래 귀여운맘 질기운맘 내눈은 감기였데 감기였데
— 김영랑 · 《영랑시선》 元記事 ↗
詩夏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元記事 ↗
詩夏
〈청포도〉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 이육사 元記事 ↗